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엔그람 왕조 (문단 편집) === 전쟁과 테러, 그리고 평화 === 그런데 로엔그람 왕조가 건국된지 불과 2주 만에 [[지구교]]의 테러로 황제가 암살당할 뻔한다.([[큄멜 사건]]) 이 사건은 [[지구교]]라는 종교가 단순한 사이비 종교가 아닌 제국을 뒤엎으려는 반역자들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었고,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을 [[지구(은하영웅전설)|지구]]로 급파해 [[지구교]]를 소탕했다.([[지구교 본거지 토벌 작전]]) 한편 동맹에 파견된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는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양 웬리]]에게 2차례나 패해서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고, 주변에서 양 웬리가 제국을 뒤엎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투서가 날아들자 동맹정부를 압박해 양을 체포했으나, [[로젠리터]] 연대의 반란으로 오히려 자신이 [[로젠리터]] 연대의 포로가 되자 수치심에 자살했다.([[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 사실이 알려지자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이 책임을 동맹정부에 물어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으로 동맹을 침공한다. [[자유행성동맹군]]은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 제국군과 최후의 전투를 벌이지만 패배하고,([[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동맹은 이후 [[겨울장미원의 칙령]]으로 완전히 멸망한다. 로엔그람 왕조는 구 동맹령을 노이에란트라는 이름으로 제국에 편입하고 초대 총독으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임명했으며, 마지막 숙적으로 [[엘 파실 독립정부]]에 가담한 [[양 웬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엘 파실]] 성계로 출정하였다. [[회랑 전투]]에서 제국군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엘 파실 독립정부를 굴복시키지 못했고, 결국 라인하르트의 제안으로 양자 간 회담이 이루어지지만 지구교도의 테러로 양 웬리와 프란체스크 롬스키 등 독립정부 수뇌부들이 사망하면서 협상은 무산되었고, 양 웬리 없는 양 함대에 흥미를 잃은 라인하르트는 페잔으로 돌아갔다. 카이저가 페잔으로 돌아간 이후, 노이에란트에는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주력 800년 9월 1일 [[하이네센]]에서 위령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제국 타도를 외치며 노이에란트 치안군과 정면충돌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터진 것이다.([[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거기에다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의 야심, 카이저 라인하르트와의 갈등, [[하이드리히 랑]]과 [[아드리안 루빈스키]]를 비롯한 모략가들의 모략, 우르바시에서 일어난 제국군의 반란([[우르바시 사건]]), 부귀영화에 눈이 먼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증거인멸 등의 이유로 로이엔탈 원수는 국정을 농단한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와 내국안전보장국장 [[하이드리히 랑]]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제국 정부는 우주함대 사령장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을 노이에란트로 급파해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으며, 양군은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격돌했다. 치열한 전투는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협조로 [[이제르론 회랑]]을 빠져나온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함대의 합류와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의 배신 때문에 노이에란트 치안군의 패배로 끝났으며,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이 전투의 부상으로 [[하이네센]]에 돌아온 뒤 사망하였다.([[노이에란트 전역]]) 로이엔탈 원수가 사망한 이후, 노이에란트 관리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이 맡게 되었다. 그런데 우주력 801년 1월부터 누군가의 공작으로 하이네센의 물류 시스템이 파괴되더니 급기야 대규모 폭동이 발발하였다. 이 소동은 노이에란트 전체로 퍼져나갔고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공작으로 페잔 항로국의 데이터까지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화주의 최후의 보루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치자는 주장이 군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대두되었지만, 그 전에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선수를 쳐 [[바겐자일]] 함대와 바렌 함대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하이네센 동란]],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노이에란트의 혼란이 잦아들지 않자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를 [[하이네센]]에 급파하였다. 오베르슈타인 원수는 하이네센에 도착하자 구 [[자유행성동맹]]의 명사 5,000명을 체포해 라그풀 교도소에 수감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항복을 강요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베르슈타인의 멱살을 잡은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이 감금되었고 누군가의 공작으로 라그풀 교도소에 폭동이 터져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며,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와 제국 헌병대가 충돌할 뻔하기도 했다. 이 사태가 터지자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 원수를 질책했고, 5월 초부터 [[나이트하르트 뮐러]]를 대표로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외교 교섭을 시작했다.([[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 우주력 801년 5월 14일, 페잔의 임시 황궁[[호랑가시나무관]]에 살던 카이저린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 뱃 속의 아기를 노리고 [[지구교]]도들이 습격했다. 지구교의 양동작전과 내부 구조에 대한 자료 부족으로 테러는 성공할 뻔 했지만,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대공비와 헌병총감 겸 제도방위사령관 [[울리히 케슬러]] 상급대장의 활약으로 지구교도의 폭거는 저지되었으며 도리어 에프라임 거리에 위치한 [[지구교 페잔지부]]까지 궤멸되었다. 카이저린 힐데가르트는 무사히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에는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직접 지은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 그해 5월 말, 노이에란트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망명하려던 수송함 '신세기호'가 이제르론 회랑에 거의 도착한 시점에서 동력이 고장나 공화정부에 구조를 요청했는데, 이 통신파가 제국군을 끌어들였고, 곧이어 양군이 충돌하였다. 이 조우전,,,遭遇戰,,,으로 양군은 시바 성역에서 충돌했으며, [[이제르론 혁명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사령관 [[율리안 민츠]]가 겨우겨우 [[브륀힐트(은하영웅전설)|브륀힐트]]의 함교에 진입해서 카이저와 만나 강화할 수 있었다. 이후 로엔그람 왕조와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런데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하이네센폴리스]]로 돌아왔을 때, 전 페잔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하이네센폴리스에는 대규모 폭발 및 화재가 일어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기거하던 하이네센 국립박물관도 불타 그 안에 있던 수많은 미술품들이 소실되었다.([[루빈스키의 불 축제]]) 그 후, 이제르론 공화정부 대표 [[율리안 민츠]]와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 문제와 제국의 입헌체제 전환을 두고 토의하면서 페잔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변이성 극증 교원병,,,變異性劇症膠原病,,,' 가칭 '황제병'이 악화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한편 [[신분증]]을 위조했다가 적발된 [[레오폴트 슈마허]]가 [[지구교]] 최후의 행동부대가 페잔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자백하면서,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는 카이저의 병환이 회복세이며, 건강이 회복되면 [[지구(은하영웅전설)|지구]]를 파괴하겠다는 헛소문을 퍼트려 지구교도를 유인하였다. 이는 공화정부가 제국과 강화한 시점에서 제국 최후의 위협세력인 [[지구교]]를 완전히 소탕하기 위한 조치였다. 계획대로 지구교는 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벨제데 임시 황궁을 습격하였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지구교도의 테러로 폭사했으나 그 대가로 [[가짜 총대주교]]와 [[드 빌리에]]를 비롯한 지구교도는 모두 소탕되었다.([[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 지구교가 소탕되고 2시간 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우주를 손에 넣으면...... 모두 함께......."라는 유언을 남긴 채 병사했다. 아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알렉]] 대공은 생후 2개월 밖에 되지 않아 카이저린 힐데가르트가 섭정을 맡았다. 이후에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번영에 힘쓴 듯하다. 8권에서 로엔그람 왕조의 특질은 ''''전제정권의 사회공정''''이라고 언급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후세의 평가인 듯하다. 은영전은 라인하르트가 죽는 에피소드를 끝으로 완결했으므로 이 '후세'가 로엔그람 왕조 존속 중의 시대인지 로엔그람 왕조가 끝난 후의 시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라인하르트 사후 이야기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므로 라인하르트가 죽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로엔그람 왕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독자들이 알아서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라인하르트 사후와 관련된 확실한 이야기는 앞서 나온 로엔그람 왕조의 특질과 힐데가르트가 로엔그람 왕조를 키웠다는 평가, 그리고 '양 웬리와 율리안이 지킨 민주공화주의의 씨앗이 우주력 800년대 후반에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대목인데, 최소한 힐데가르트 섭정 시기까지는 확실하게 로엔그람 왕조가 유지되었고 실권이 황제에게 넘어온 뒤에도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우주력 800년대 말에 어떤 계기나 사건을 통해 민주공화주의가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로엔그람 왕조가 완전히 멸망했는지, 아니면 [[입헌군주제]] 같은 방식으로 이후에도 존속했는지는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